1930년 월드컵 우승 : 우루과이 대표팀

1930년 월드컵 우승 : 우루과이 대표팀

 

[감독] 알베르토 호라시오 수피치

  • (Alberto Horacio Suppici, 18981120~ 1981621)
  • 우루과이의 기술 감독으로서, 수피치는 1929년 남미축구선수권대회에서 팀을 3위로 이끌었다. 1930년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우루과이를 초대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면서 월드컵에서 우승한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그는 1928년 올림픽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딴 골키퍼 안드레스 마잘리를 (통행금지 위반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제외시킨 상태로 우승을 하였다.

 

엔리케 페드로 발레스트레로 그리포

  • (Enrique Pedro Ballestrero Griffo, 1905118~ 19691011)
  • 우루과이 대표팀의 골키퍼로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그는 대회 내내 안정된 방어를 선보이며 우루과이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도 득점왕 스타빌레의 결정적인 슈팅을 선방하며 수훈갑 역할을 해냈다.

 

호세 나사찌 야르자

  • (José Nasazzi Yarza, 1901324~ 1968617)
  • 우루과이 대표팀의 주장으로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몬테비데오 벨라 비스타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주세페와 스페인 출신의 마리아 자킨타 야르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우루과이의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여긴다. “위대한 총사령관”(El Gran Mariscal : The Great Marshal)이란 별명으로 불려졌으며,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1923, 1924, 1926년 남미축구선수권대회, 1930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1930년 월드컵과 1923년 남미축구선수권대회(코파아메리카)에서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우루과이가 1934년 월드컵에 불참하여서 뛰지 못했지만, 그는 은퇴하기 전에 1935년 남미축구선수권대회에서 다시 우승하였다.

 

에르네스토 마스케로니

  • (Ernesto Mascheroni, 19071121~ 198473)
  • 우루과이 대표팀 수비수로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암브로시아나(지금의 인터밀란)에서 활약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이후 1936년부터 1940년까지 클럽 축구 페냐롤(Peñarol)에서 뛰었다.

 

알바로 안토니오 헤스티도 포세

  • (Álvaro Antonio Gestido Pose, 1907517~ 1957118)
  • 우루과이 대표팀 미드필더 겸 수비수로 1928년 올림픽과 1930년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1926년부터 1940년까지 클럽 축구 페냐롤(Peñarol)에서 뛰었다. 그의 형 오스카르 디에고 헤스티도는 1967년 우루과이 대통령이었다.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 (José Leandro Andrade, 19011122~ 1957105)
  •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전설의 미드필더로 별명은 블랙마블”(The Black Marvel)이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이 1920년대 국제 축구를 지배하는 데 기여했다. 두 번의 올림픽과 월드컵 우승에 기여하였다. 축구에 입문하기 전에는 음악가,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의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였다.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전 때 골대와 충돌하여 눈을 크게 다쳤고, 이것이 악화되어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 그의 말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무일푼에 알코올 중독으로 불운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로렌초 페르난데스

  • (Lorenzo Fernandez, 1900520~ 19731116)
  • 스페인 갈리시아 태생의 우루과이 축구선수로 안드라데와 함께 우루과이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였다. 본명보다는 엘 가예고’(El Gallego, 갈리시아인)라는 별명으로 더욱 자주 불렸다. 1928년 올림픽, 1930년 월드컵, 1926년과 1935년 코파아메리카에서 우승하였다.

 

엑토르 스카로네(엑토르 페드로 스카로네 베레타)

  • (Héctor Pedro Scarone Beretta, 18981126~ 196744)
  • 우루과이 대표팀의 우측 공격수로 우루과이 대표팀의 황금기를 주도하였다. 볼을 다루는 기술이 워낙 뛰어나 ‘El Mago’(마술사)라는 애칭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우승과 1930년 월드컵 우승에 기여하였으며, 네 차례의 코파아메리카 우승(1917, 1923, 1924, 1926)에도 기여하였다. 1917년부터 1930년까지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51경기에 31골을 넣었다. 그는 또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이탈리아의 인터밀란, 팔레르모에서 활약하였다. 은퇴 이후 1950년대에 나시오날과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을 역임하였다.

 

파블로 도라도

  • (Pablo Dorado, 1908622~ 19781118)
  • 우루과이 대표팀의 공격수로 22세의 젊은 나이로 1930년 월드컵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는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경기 시작 12분 만에 선제골을 성공시켜 월드컵 역사상 첫 결승전 득점의 주인공이 되었다.

 

산토스 이리아르테(빅토리아노 산토스 이리아르테)

  • (Victoriano Santos Iriarte, 1902112~ 19681110)
  • 우루과이 대표팀의 왼쪽 공격수로 ‘El Canario’(작은 카나리아)라는 별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드리블 돌파에 매우 능했던 그는 유고슬라비아와의 준결승전과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득점을 성공시켰다.

 

엑토르 카스트로

  • (Hector Castro, 19041129~ 1960915)
  • 우루과이 대표팀으로 1930년 월드컵을 빛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13세 때 사고로 팔을 잃어 ‘El Manco’(외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한 쪽 팔이 없음에도 특유의 비틀거리는 동작으로 상대 선수를 제쳐내는 돌파에 능숙했다. 강한 승부근성과 골에 대한 남다른 집착력을 선보여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했던 주인공이다. 그는 1923년부터 1935년까지 우루과이 대표팀을 지냈으며 1926년과 1935년 남미축구선수권대회(코파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했으며, 국제경기에 25경기에 출전해서 18골을 넣었다. 은퇴 후에 나시오날 감독을 역임하며 1940, 1941, 1942, 1943, 1952년에 우루과이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

 

페드로 세아(호세 페드로 세아

  • (José Pedro Cea, 190091~ 1970918)
  • 1920~30년대 우루과이 대표팀을 상징하는 공격수였다. 1923년 우루과이 대표팀에 데뷔하여 그해 남미축구선수권대회(코파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한다. 이후 1924년과 1928년 올림픽과 1930년 월드컵 우승에도 기여하였다. 특히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1-2로 뒤지던 57분에 동점골을 넣으며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1930년 월드컵 당시 득점왕 스타빌레의 뒤를 이어 5골을 기록했다.

댓글